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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식자> 3장. 단세포
  글쓴이 : 전파과학사     날짜 : 20-04-06 14:59     조회 : 95     트랙백 주소

  • 산소의 시대

지금으로부터 대략 23억 년 전쯤 지구 대기에 극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본래 지구 대기에는 이산화탄소, 메탄 같은 온실가스가 풍부했고 산소는 거의 없었는데 갑자기 산소의 비중이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높아진 것이다.

이를 대산소화 사건GOE, Great Oxygenation Event이라고 부른다.

대산소화 사건의 배경은 생명 그 자체다. 시아노박테리아를 비롯한 광합성 생명체가 등장한 후 마침내 지구 대기 중 산소 농도가 상승했다.


그런데 사실은 광합성 생물의 등장 자체는 대산소화 사건보다 적어도 5억 년 이전으로 추정된다.

그러면 왜 그 사이에 산소 농도는 증가하지 않았을까?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대표적인 이유 중 하나는 당시 바다에 철(Fe) 같은 물질이 풍부해 이제 막 분리된 산소와 결합했기 때문이다.

이때 만들어진 산화철은 나중에 중요한 자원이 된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자 산소가 처리되는 것보다 대기에 축적되는 양이 많아지면서 지구 대기 중 산소 농도가 의미 있게 증가했다.


산소의 농도가 올라간 것은 지구 생명체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변화를 일으킨다.

온실효과를 감소시켰기 때문이다. 우리가 쉽게 간과하는 사실 가운데 하나는 태양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밝아진다는 점이다.

태양계 초기의 태양 밝기는 현재의 70~80% 수준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지구는 물론 화성까지 액체 상태의 물이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강력한 온실효과 덕분이었다.

온실효과는 최근에는 급격한 지구 기온 상승 때문에 악의 축처럼 생각되지만, 사실 우리는 온실효과 덕에 얼어붙지 않고 살 수 있다.

단지 최근에 인간이 배출하는 온실가스가 빠르게 온도를 올리고 있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산화탄소와 메탄이 만든 온실효과는 지금보다 태양이 어둡던 시절 지구를 얼어붙지 않게 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덕분에 지구에 생명체가 탄생하고 지금처럼 번성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산소가 많이 증가하자 새로운 변화가 나타났다. 이산화탄소는 산소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지만,

메탄의 경우 산소와 만나면 쉽게 반응해서 이산화탄소와 물이 된다.

대산소화 사건 당시 메탄가스가 산소와 반응해서 이산화탄소로 바뀐 것은 온실 효과를 떨어뜨리는 데 크게 기여한 것 같다.

이산화탄소도 온실효과를 지녔지만, 메탄가스에 비하면 매우 약하다.

덕분에 지구는 기온이 떨어지면서 앞으로 일어날 큰 파국을 막았다.

태양이 점점 밝아짐에도 온실효과가 줄어들면서 지구가 금성처럼 뜨거워지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크게 보면 그렇다는 이야기고 24억 년에서 21억 년 사이 지구는 마치 <투머로우> 같은 재난 영화의 한 장면을 방불케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산소는 반응성이 매우 좋은 기체로 다른 분자를 산화시키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고 있다.

우리는 산소 호흡을 하니까 인식하지 못하지만,

사실 당시 산소가 없는 혐기성 환경에서 진화한 많은 세균과 고세균들에게는 산소의 증가가 독성물질의 증가나 다름없었다.

더구나 온실효과가 갑작스럽게 감소하면서 지구 기온이 하강해 빙하기가 도래했다.

휴로니안 빙하기Huronian glaciation라고 불리는 역사상 가장 오래된 빙하기가 시작된 것이다.

이 시기 수많은 세균과 고세균이 멸종한 것으로 추정한다. 하지만 다행히 지구 생태계는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출 수 있었다.

온도가 너무 떨어지면 광합성도 감소하면서 다시 온실효과가 증가했고 반대로 온도가 올라가면 광합성이 증가하면서 온실효과가 감소했다.

결국,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추는 가운데 지구 기온이 정상을 찾아갔다.


동시에 지구 대기와 바다에 산소가 증가한 것은 많은 생명체에게 재앙이었지만,

일부 생명체에게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했다. 앞서 말한 진핵세포의 진화가 그것이다.

진핵세포는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대부분 산소로 호흡을 한다.

산소 호흡을 한다는 것은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이 미토콘드리아를 갖춘 복잡한 세포의 진화를 의미한다.

그런데 산소 호흡을 위해 꼭 미토콘드리아가 필요할까?

사실 산소호흡 자체는 미토콘드리아 없이 일어날 수 있지만, 문제는 효율성이다.


우리는 세균이 별 기능이 없는 세포막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고 생각하지만,

세포 생물학과 미생물학을 배우면 실제로는 반대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세포막이야 말로 세포 대사의 중심이다.

산소를 이용해서 ATP를 생산하는 과정도 막을 둘러싸고 일어난다.

미토콘드리아는 외막과 내막 두 개의 막으로 구성된 세포 소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미토콘드리아에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세포막에서 직접 산소 호흡을 하는 진핵세포를 생각해보자.

물론 이 세포도 산소를 이용해서 ATP를 만들 수 있지만 양은 많지 않다.

질량과 부피만큼 면적이 커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1cm인 각설탕을 생각해 보자.

정육면체인 각설탕의 표면적은 6cm2이고 부피는 1cm3이다.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2cm인 경우 표면적은 4×6=24cm2이고 부피는 2×2×2=8cm3이다.

부피는 8배 늘어나는데, 면적은 네 배 증가했다.

즉 부피는 세제곱에 비례하는데 면적은 제곱에 비례하는 것이다. 따라서 작은 세균이라면 문제없는 상황도 크기가 큰 진핵세포에서는 문제가 될 수 있다.

미토콘드리아는 이 문제에 대한 완벽한 해결책이다.

산소 호흡이 사실상 미토콘드리아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반응 면적을 늘리기 위해서 세포 표면적을 늘리는 대신 미토콘드리아를 늘리기만 하면 된다.

이는 각설탕 안에 여러 개의 작은 각설탕이 들어가 표면적을 늘리는 것과 같다.


산소가 많아지고 이를 이용할 수 있는 미토콘드리아까지 갖추면 이제 진핵생물이 나아갈 길은 크게 두 가지다.

스스로 유기물을 합성하든지(식물) 아니면 남의 유기물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들 가운데 다른 생물을 잡아먹는 것을 동물이라고 부른다.

하나의 세포에 불과할지라도 단세포 동물은 의문의 여지가 없는 완벽한 사냥꾼이다.

이들 중 대다수는 미토콘드리아가 제공하는 에너지 덕분에 활발히 움직이며 먹이를 잡아먹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일부 동물은 미토콘드리아의 도움 없이도 사냥을 한다.

이 장에서는 단세포 동물 가운데 가장 단순하고 오래된 종류인 아메바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해보자.



  • 아메바 이야기

아메바라는 생물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형태가 일정치 않다는 의미의 이 단세포 생물은 사실 하나의 단일한 집단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아메바 운동amoeboid movement를

보이는 여러 생물체를 통칭하는 단어로 보통은 원생동물protozoa에 속하는 단세포 동물군을 이야기한다.


아메바라는 명칭이 다양한 생물을 뜻하긴 하지만, 대부분의 아메바는 육질충류Sarodina라는 그룹에 속한다.

육질충류는 강class이나 아문subpylum 정도 되는 지위를 가진 원생동물군으로 역시 다양한 종류가 있는데,

아메바는 이 가운데 근족충류Rhizopoda에 속한다. 앞서 본 고아메바류도 여기 속한다.

아무튼 육질이니 근족이니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아메바의 중요한 특징이 떠오를 것이다. 아메바하면 생각나는 위족pseudopodia이 바로 그것이다.


위족은 세포질 일부가 다리처럼 뻗어 나오는 것이다.

아메바는 단단한 껍데기가 없기 때문에 모든 방향으로 위족을 낼 수 있지만 대신 정해진 형태가 없다.

덕분에 식세포 작용이 가능하지만, 사실 흐느적거리기만 해서는 먹이를 잡을 수 없다.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도 있어야 한다.

아메바의 세포질에는 액틴 마이크로필라멘트actin microfilament라는 미세한 섬유가 존재한다.

액틴 마이크로필라멘트는 지름 7nm 정도의 미세한 섬유로 액틴 단백질이 두 가닥으로 결합한 것이다.

이 역시 생물학을 배웠던 사람에게는 낯설지 않은 물질이다. 인간을 포함한 다세포 동물의 근육을 구성하는

중요한 물질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아메바는 이를 이용해서 위족을 내고 먹이를 먹는다.

여기서는 우리 인간과 깊은 관련을 지닌 아메바인 이질아메바Entamoeba histolytica, 적리아메바의 삶과 사냥 방식을 살펴보자.


이질아메바는 원생동물아계 육질충편모충문 육질충아문 근족충상강 엽상위족강 무각아메바아강 아메바목라는 긴 분류학적인 명칭보다

이질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순간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 아메바인지 쉽게 이해가 가능하다.

우리가 오염된 물이나 음식을 먹으면서 이 녀석을 삼키면 아메바성 이질을 일으켜 복통, 점액변, 설사, 발열 등의 증상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흥미로운 사실은 90% 정도는 증상이 없거나 가벼워서 감염 여부를 잘 모른다는 사실이다.

이전 연구에 의하면 5억 명이 감염되고 매년 10만 명 정도가 사망한다고 알려져 있다.

다만 이중 상당수는 형태가 비슷하지만 병원성이 없는 동형아메바Entamoeba dispar 감염에 의한 것으로

실제 이질아메바 감염 사례는 이보다는 적은 것으로 추정된다.

더욱 다행인 것은 국내엔 아메바 감염 자체가 드물다는 사실이다.


필자가 처음 이 아메바를 본 것은 병리과 슬라이드였다.

아메바 내부에 소화되지 않은 빨간 적혈구가 보이는 슬라이드를 현미경으로 보고 있으면 이 녀석은 사람 적혈구를 주식으로 삼는 나쁜 녀석인 것 같다.

하지만 진실은 좀 다르다. 이 기생충(아메바도 단세포이긴 하지만 분명 동물이므로 기생충이다)은 생각보다 복잡한 생활사를 가진 원생동물이며

사실 적혈구를 주식으로 삼지 않는다.


이질아메바가 사람 몸에 들어올 때는 물과 토양에 있는 피낭체cyst 형태로 흡수된다. 아메바는 얇은 세포막만을 가지고 있는데,

이 상태로는 거친 환경에서 견디기 어렵기 때문이다.

장시간 외부 환경에서 견딜 수 있는 피낭체는 위산이라는 강력한 산성 환경에서도 살아남아 목표 지점인 대장까지 도달할 수 있다.

일단 장으로 들어오면 피낭에 숨어있던 아메바가 이제 영양체trophozoite의 형태로 바뀐다.

껍질을 벗어던지고 우리에게 친숙한 아메바 형태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사람 대장 속으로 들어온 아메바는 표면의 점액층mucus layer에 보금자리를 만들고 대장 속에 풍부한 장내 세균을 먹으면서 삶을 영위한다.

대장 속에서 번성하는 장내 세균은 그 수가 인간 세포보다 더 많다.

이곳에서 아메바는 인간이 제공하는 음식물을 먹는 박테리아를 먹으면서 장내 생태계의 먹이사슬에서 정상을 차지한다.

이를테면 세렝게티의 초식동물을 사냥하는 사자 같은 존재다.


그런데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장 속의 이질아메바는 사자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호사를 누리는 생명체다.

장 속의 세균은 세렝게티의 초식동물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풍부할 뿐 아니라 얼룩말처럼 사냥하기 힘든 것도 아니어서

아메바는 그냥 근처에 오는 먹이감을 잡아먹기만 하면 된다.

사실 장내 세균의 양으로 생각하면 이들은 먹이가 가득 든 거대한 욕조 안에서 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다만 대장 내부는 산소가 희박한 환경이므로 여기에 적응해서 미토콘드리아를 과감히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한때 이들은 미토콘드리아가 없는 진핵세포라는 이유로 아케조아의 유력한 후보 가운데 하나로 지목되기도 했지만,

앞서 설명했듯이 현재는 가설 자체가 폐기되었다.

결국, 이질아메바는 현생 진핵생물의 조상에서 게으른 기생충의 자리로 다시 돌아왔다.


하지만 기생충이라도 따뜻한 사람 대장 점막층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면서 맛난 장내 세균만 먹을 때는 아무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당연히 대부분 감염은 무증상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인체의 면역력이 약해지거나 혹은 알 수 없는 이유로 해서 아메바가 점액층을 떠나 더 아래 있는 세포층에 도달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렇게 본래 위치를 지키지 않으면 본격적으로 염증이 발생하는 것이다.

일단 인체 조직 안으로 침투한 아메바는 생각보다 식성이 까다롭지 않아서 인간 세포도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

그런데 이 역시 이유가 있다.


앞서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지만, 사실 식세포 작용 역시 생각보다 복잡한 기전으로 일어난다.

생각해 보라. 눈도, 귀도, 코도 없는 아메바가 어떻게 정확히 먹이를 파악하고 위족을 뻗어 먹이를 잡을 수 있겠는가?

아메바 표면에는 먹이에 결합하는 물질인 렉틴lectin이 존재한다.

렉틴은 당 결합 단백질의 일종으로 세포 표면에 있는 여러 당 분자(이 경우는 galactose와 N-acetylgalactosamine)와 결합한다.

본래 목적은 먹이가 되는 박테리아와 결합해 들러붙는 끈끈이인데, 아쉽게도 인간의 대장 점막 상피세포의 당 분자와도 결합이 가능하다.

사실 이 부분이 중요한데, 감염의 첫 단추는 이렇게 일단 몸 안으로 침투하는 데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첫 5초간이라도 눈길을 사로잡아야 소비자의 관심을 끌 수 있는 광고처럼 모든 일에는 처음이 가장 중요하다.


일단 들러붙는 데 성공하면 다음 단계는 둘러싼 후 먹는 것이다.

단, 인체 감염의 경우 인간 세포가 박테리아보다 훨씬 커서 당연히 꿀꺽 삼키기는 힘들다.

하지만 이 아메바는 다 집어삼키지 못해도 소화효소를 뿌려 먹이를 녹여 먹는 재주가 있다.

사탕을 삼키지 못해도 녹여서 조금씩 먹는 식이다. 물론 사람 세포는 사탕이나 아이스크림이 아니지만,

그래도 이 소화효소 앞에서는 속수무책으로 녹는다.

Entamoeba histolytica에서 히스톨리티카는 사실 조직을 파괴한다는 의미다.

세균한테는 효과적인 방어막을 펼치는 장세포도 히스톨리티카의 소화효소 앞에서는 흐물흐물 녹아버린다.

이런 침투능력은 근연관계에 있는 동형아메바와의 차이점이다.

이 녀석은 이질아메바와 구분이 힘들 만큼 비슷하지만, 조직 침투 능력이 없어 인체에서 질병을 일으키지 않는다.


조직 안으로 침투한 이질아메바는 조직을 더 크게 녹여 대장 점막에 궤양을 만들 뿐 아니라 출혈이 일어나면서 빠져나온 적혈구를 하나씩 게걸스럽게 먹는다.

아메바에겐 다행이고 우리에게는 불행으로 적혈구 표면에도 들러붙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정도까지 진행되면 이제 본격적으로 복통, 발열, 혈변, 점액변 등의 증상이 발생할 것이다.

그래도 아메바가 장 속에서만 문제를 일으키면 그나마 다행이다.

심한 경우는 아메바가 혈관을 타고 전파되어 간, 폐, 뇌까지 퍼진다.

이곳에서 농양을 만들면 매우 심각한 전신 감염이 되는 것이다.

특히 에이즈 환자처럼 면역력이 약해진 경우 심각한 아메바 감염이 쉽게 발생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에이즈를 일으키는 인간 면역 결핍 바이러스 (HIV)에 감염된 조직과 세포를 먹은 아메바 역시 HIV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은 큰 우려를 낳았다.

워낙 흔한 아메바로 사람에 기생하는 녀석이라 이 아메바가 HIV를 옮기고 다니면 대책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만다행으로 아메바가 먹은 HIV는 감염성을 상실하고 내부에서 증식하지도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숙주가 워낙 다른 탓이지만,

만에 하나라도 HIV가 아메바 안에서 증식할 수 있거나 감염력을 유지한 채 다른 사람에게 전파될 수 있다면 인류는 큰 위기에 처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사람 입장에서는 아주 좋은 녀석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철저한 악당도 아닌 녀석이 바로 이질아메바다.



  • 농사와 광합성을 하는 아메바

아메바는 인간에게 해를 끼치든 아니든 간에 보통 좋은 뜻으로는 쓰이지 않는다.

‘아메바 같은 녀석’이라는 말에 좋은 뜻이 담겨있지는 않을 것이다.

대부분 아메바는 오래전 다세포화를 마친 다른 원생동물과 분리된 우리의 먼 친척으로 지금까지 단순한 단세포 생활을 고집하고 있다.

그런 만큼 단순하고 하등한 생물이라는 편견이 우리 안에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잘못된 편견이라는 사실은 지구상에 박테리아가 가장 흔한 생물체이고 단세포 진핵생물이 여전히 번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명확히 증명된다.

만약 진핵생물이 더 우월하다면 현재까지 수많은 세균이 번성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마찬가지로 다세포 생물이 우월하다면 왜 수많은 단세포 진핵생물이 존재할까?

원핵생물에서 진핵생물로 가는 강력한 진화압이 존재한다면,

다시 말해 진핵생물이나 다세포 생물이 생존에 더 유리하다면 현재는 세균 같은 원핵생물이나 단세포 진핵생물이 자연선택에 의해 도태되어 사라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는 것이 이들의 삶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입증한다.


더구나 이들은 단순하기만 생물체가 아니다.

앞서 살펴본 델로비브리오처럼 박테리아의 생활사 역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다양하다.

사실 가장 단순한 박테리아라도 보잉 747보다 더 복잡한 구조를 지닌 유기체다.

이보다 더 복잡한 아메바 역시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다양한 삶의 방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박테리아를 키우는 재주를 지닌 아메바가 존재한다는 것은 진핵세포의 복잡성에 익숙한 과학자들에게도 놀라운 발견이다.


딕티오스텔리움 디스코이데움Dictyostelium discoideum은 여러 가지 독특한 특징을 지닌 토양 아메바로 많은 연구가 이뤄진 단세포 생물이다.

이 아메바는 점균류Mycetozoa에 속하는데 아메바이면서 포자를 만들고 이 포자가 발아해서 독립된 아메바가 되는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더구나 독립된 토양 아메바로 존재할 수도 있으나 환경이 나쁠 때는 모여서 점액 같은 다세포 덩어리를 형성하는 등

단세포와 다세포의 특징을 동시에 지닌 카멜레온 같은 녀석이다.


하지만 더 놀라운 사실이 2011년에 밝혀졌다.

데브라 브룩(Debra A. Brock)을 비롯한 연구자들이 이 아메바가 농사를 짓는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이들이 먹이로 삼는 박테리아인 슈도모나스 플루오레센스Pseudomonas fluorescens는 인체에는 무해한 토양 내 박테리아로 흔하게 볼 수 있는 세균이다.

토양 아메바인 딕티오스텔리움 디스코이데움은 이 박테리아를 먹고 산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이 아메바가 일부 박테리아를 소화시키지 않고 체내에 보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이유는 소화불량이 아니라 농부들이 다음 해에 파종할 씨앗을 먹지 않고 남기는 것과 동일하게 종자를 보존하는 것이다.


딕티오스텔리움 디스코이데움은 자실체fruit body, 포자를 만드는 영양체라는 상태에서 농사지을 균을 내부에 보관한다.

이후 아메바는 다른 곳에 정착한 후 주변 토양에 이 박테리아를 뿌리고 키워서 다시 잡아먹는다.

물론 정확히 말하면 식물이 아니라 박테리아를 키우는 것이기 때문에 농사와는 조금 다르지만, 놀라운 일인 건 분명하다.

언제 박테리아를 보존하고 파종한 후 잡아먹어야 하는지 단순한 세포 하나가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메바의 다양한 진화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민물에서 사는 아메바의 일종인 파울리넬라Paulinella는 엽록체의 기원을 설명할 수 있는 모델로 과학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믿기 어려운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아메바는 몸속에 광합성을 할 수 있는 박테리아인 시아노박테리아를 품고 여기서 에너지를 공급받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들이 가진 것이 엽록체가 아니라 시아노박테리아라는 사실이다.

아직 세포 소기관으로 진화하기 이전의 독립된 박테리아를 품고 있다.


이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유력한 가설은 오래전 파울리넬라의 조상이 시아노박테리아를 먹으면서 살아가다가

우연히 소화시키지 않은 시아노박테리아를 품게 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이 박테리아를 죽이지 않고 양분을 섭취하는 방식을 진화시켰다는 것이다.

물론 반대로 시아노박테리아가 아메바 내부에 기생하면서 공생 관계가 시작되었을 수도 있지만,

독립 생활을 하는 시아노박테리아가 기생해서 얻을 수 있는 이점이 확실치 않은 점을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소화되지 않은 박테리아 쪽이 더 가능성 있는 가설로 보인다.

쉽게 말해 적어도 15억 년 이전에 발생한 엽록체의 세포 소기관화가 다시 일어난 것이다.


독일과 미국의 연구팀은 파울리넬라와 시아노박테리아의 유전자를 해석해서 이와 같은 세포 내 공생이 발생한 것이 약 1억 년 전이라고 추정했다.

그 사이 상당한 공진화가 이뤄져 이제 이 시아노박테리아와 파울리넬라는 서로가 없이는 못살 정도에 이르렀다.

심지어 일부 파울리넬라는 이제 포식자로서의 과거를 잊고 식물로 살기로 작정한 듯 아예 식세포 작용도 잘 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직 엽록체로 완전히 진화된 것이 아니라 몇 가지 곤란한 문제도 있다.

대표적인 것은 아직 유전자가 시아노박테리아 안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미토콘드리아나 엽록체의 유전자는 이미 대부분 핵으로 이동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일종의 발전소 역할을 하는 세포 소기관이다 보니 유전자가 손상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다 세포 하나에 미토콘드리아는 수천 개가 존재할 수도 있다.

수천 개의 동일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것은 엄청난 낭비다.

동시에 박테리아가 가진 유전자는 상당히 불안정해 소실되는 경우도 많다.

이런 문제로 인해 항시 대기해야 하는 일부 유전자를 제외한 대부분 유전자가 핵으로 이동한 것이다.


그런데 파울리넬라 안에 사는 시아노박테리아는 아직 이 과정을 거치지 못했다.

따라서 상당히 곤란한 문제가 발생한다.

시아노박테리아가 증식하다 보면 유전자를 잃는 경우가 나오는데 과연 어디서 보충할 것인가?

자유 생활을 하는 박테리아는 상호 간에 쉽게 유전자를 교환한다.

그래서 필요 없는 유전자는 정말 과감하게 버린다.

하지만 핵 속에 많은 유전자를 지닌 진핵생물은 그렇게 하기 힘들다.

안전하게 보관하는 대신 쉽게 꺼내서 교환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 때문에 파울리넬라는 마치 박테리아처럼 자유 생활을 하는 시아노박테리아로부터 유전자를 받아들이는 방법을 진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파울리넬라의 사례는 아마도 식물의 조상 역시 한때 단세포 포식자였다는 점을 암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메바를 포함해서 단세포 사냥꾼의 다양함은 이루 말할 수 없고 어떤 방향으로든 진화할 가능성이 있다.

초기 단세포 사냥꾼이 식물로 진화했다고 해도 놀라운 일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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